게임 리뷰

(스포일러) 'Pedestal' 리뷰: '모르는 게 약이다'

Ɠ 2021. 12. 7. 19:22

게임 소개 및 다운로드(일본어): https://www.freem.ne.jp/win/game/27139

게임 소개(제작자 사이트, 일본어): http://2style.in/uri/pedestal/top.html

게임 소개(본 블로그): https://beenmoon.tistory.com/2

제작자의 글(일본어): http://2style.in/uri/pedestal/omake.html

 

 

 

'Pedestal'은 '더 크루키드 맨', '인어늪' 등 퀄리티 높은 울프툴 게임을 만든 Uri Games의 최신작이나, 이전과 다르게 탐색, 공포 장르를 벗어나 게임의 대부분이 대사로 진행되는 비주얼 노벨에 가깝습니다.

이에 따라 이른바 게임성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줄어들었지만, 전작들에서 느낀 단점인 탐색 부분을 즐기기에는 많은 대사가 맥을 끊고, 스토리에 집중하기에는 중간 중간 탐색하다보면 흐름을 놓치는 등 스토리와 탐색이 서로 방해되는 것을 해소한 점도 있습니다. 제작자의 말에서 밝히듯이 제작자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하기 위함인가 봅니다.

 

 

게임의 중심 소재는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학생의 의문사인데, 그 학생이 학교 내에서 꽤 유명했기 때문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오이가 이에 호기심을 갖고 조사하는 것으로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은 크게 Stage1과 Stage2로 나뉘는데, 챕터의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Stage1은 시오리의 죽음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오이는 시오리의 주변을 조사하여 마침내 그녀의 죽음을 알아내고 이야기는 일단락을 짓습니다. 조사는 시오리가 스스로 투신하였는지 혹은 남에 의해 떨어졌는지를 밝히는 것을 중점으로 진행되는데, 실은 사고였다는 얼핏 맥이 빠지면서도 다행스러운 사실에 도달합니다.

특정 조건들을 만족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엔딩1 'Ignorance is Bliss'를 맞는데, 모든 진상을 밝히지 못한 시점에서 끝맺는다는 것에서 소위 노말 엔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엔딩의 이름은 '모르는 게 약이다.' 이 시점에서는 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게임의 끝을 보았을 때 그 이유를 통감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도, 플레이어도.

 

 

Stage1을 진행하는 동안 조건을 달성했다면 전개가 약간 달라지며 Stage2로 넘어갑니다.

Stage2는 아오이가 시오리의 죽음 너머 시오리 그 자체를 알고자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오이는 이전에 드러나지 않았던 시오리의 관계인들의 사연과 진심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시오리 자신을 그려볼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영화 '키사라기 미키짱'을 떠올리게 하는 전개인데, 밝혀지는 진상은 사실 예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시오리뿐만 아니라, 예상할 수 없었던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생전에는 알지 못한 시오리를 알게 될 쯤, 아오이는 오히려 가장 가까운 아카리를 모르게 됩니다.

여기서 이런 상황을 모른 척하면 엔딩2 'Leave My Idol Be' 우상을 그대로 두는 결단을 하고, 확인하면 엔딩3 'Only the Pedestal Remains' 단지 대좌만 남을 뿐인 결과를 맞게 됩니다. 엔딩3을 소위 트루 엔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오이가 말하듯, 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아카리가 그런 짓을 했단 것을 알아도 시오리는 잘 모르는 남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반응하지는 않았겠지만, 조사를 하면서 아오이에게 시오리는 더 이상 남으로는 머무를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아카리는 아오이를 배신한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카리는 당당하게 인정하고 오히려 자신이 먼저 아오이와의 관계를 끊고 멀리 떠나버립니다. 잘못을 한 쪽이 소위 쿨하게 떠나버리는 것은 다른 데에서도 볼 수 있는 전개지만, 보통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묘사가 함께인 것과 달리 이 게임에는 아카리는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하나도 없습니다. 제작자의 글에 따르면, 제작자는 악인의 사연을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제작자는 게임이지만 그래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모든 사연이 밝혀지는 게임과 달리 현실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내막을 알 수 없는 점을 따른 것 같습니다. 이는 제작자가 이 게임을 만들게 된 시작인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모두 해피 엔딩에 다다를 수 있는가.'라는 주제에도 어느 정도 부합합니다.

 

 

진상이 어떻건 이유가 있든 말든 아카리는 아오이를 영원히 떠납니다. 이런 상황에 마땅히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아오이에게, 얼굴은 자주 비춰도 별 비중은 없던 빈 선생이 일단은 어른으로서의 조언을 합니다. '아카리는 죽었다, 그래서 너희들은 헤어진 거다. 그렇게 생각해라.' 이는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드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제작자의 의견과 일치합니다. 또한 빈 선생이 말하듯이 소위 어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에 매달리면 일상을 살 수 없게 되니까요. 물론 하나의 방법일 뿐이죠.

다만 아카리가 아오이의 마지막 얼굴을 잊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아오이 또한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아카리를 잊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결말을 본 후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의 장미는 그 이름뿐, 우리에게는 그 이름만 남았을 뿐.' 보통 어떤 위대한 것도 결국 덧없어진다는 표현으로 해석되지만, 아무리 오래되어도 이름만큼은 남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상이 사라져도, 그것이 있던 자리만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마지막에 아오이에게 남은 것은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Pedestal'은 Uri Games의 오래간만의 신작(리메이크를 제외하면)으로, 제작자는 원래 이 게임을 만들기 전에 프리 게임 제작을 그만두려고 했으나, 예전부터 계획했으나 실현하지 못한 것들은 해내기로 마음 먹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작자가 2014년에 제작한 게임 '더 샌드맨'의 부록에 'Pedestal'의 정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 게임은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이 되고, 제작자가 현재 작업 중인 'Six Shot'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